문화생활

오늘은 서방이 제한시간 8시간을 주고 애를 봐주기로 해줘서 

친구와 동대문에서 루이비통 전시회를 보러갔습니다.

서방 덕분에 친구 덕분에 이렇게 가끔 문화생활을 즐길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습니다.

사실 애를 데리고도 한번씩 갔는데요...좀 힘이 들더라고요...애는 별 관심이 없고...ㅠ_ㅠ

찡찡하고... 먹을걸로 달래줄려니 전시관에서는 음식물 금지고...

여하튼 루이비통 전시를 간단히 안내 하자면, 

관람 기간  

2017년 6월 8일 - 8월 27일

관람 시간  10:30am - 6:30pm
(금요일/토요일/공휴일)  9:00pm까지 연장 운영

(입장 마감 : 전시 종료 30분 전)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림터 A1
주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요금
무료
약도 >

루이비통 홈페이지에 보면 잘 만들어 놨더라고요.
한번 루이비통을 자세히 알고싶으면 홈페이지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홈페이지 주소 : http://kr.louisvuitton.com)

이번 루이비통 전시의 제목은 이렇다.

"Volez, Voguez, Voyagez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 루이 비통(Louis Vuitton)" 


사실 대학 전공이 패션디자인과라 하더라도 흙수저 서민인 나로서는 루이비통하면 그저 비싼 똥가방만 생각하고 있었지,

왜 비행하고 항해하고 여행하라는 것인지 전혀 연관이 되질 않았어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디자인에서 손 땐지도 오래됐고, 애낳고 가정주부가 되어서 감 떨어진지 무지하게 오래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사람이 명품이면 동대문 옷을 입어도 명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1인이었거든요.

그러나 전시를 다보고 나서는 역시 만드는 사람이 명품이고, 장인정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명품이구나 하고 느끼고 왔네요.

명품이랑 자고로 원단가, 공임비, 광고가, 이윤 몇%로 가격이 매겨지는게 아니라 가치에 의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값어치를 따질수 없는 루이비통의 발자취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단순한 가방, 트렁크, 옷이 아닌 근현대사를 담은 유물로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올라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 편하게 적기 위해 습니다→이다 글씨체로 적겠습니다)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루이비통 홈페이지를 통해서 사전예약을 해야하는데 

일반예약 / 도슨트투어예약 / 아트토크예약 이렇게 세가지로 예약을 할수가 있고,

일반예약을 하고 오디오가이드를 청취할수있다 오디오 내용은 팜플렛에도 있는 전시 내용을 읽어주는 정도이다.

참고로 도슨트투어는 올매진이다.....

사전예약을 하면 이렇게 안내문자가 오고 링크를 누르면 관람일자와 시간 티켓바코드가 있다.

방문시간 한시간 동안 관람을 하는것이 아니라 11:30~12:30 동안 입장이 가능한 시간이다.


친구가 알려줘서 오게된 전시인데

사실 무료라 그래서 많이 생각을 하고 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애는 집에 맡기고 문화생화을 한다는 들뜬 기대감만 가득있었다.

하지만 규모가 생각보다 방대했고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전시를 다 관람하고 나올 수 있었다.

애를 데리고 한번 더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반예약을 다시 또 했다.

아이랑 같이 간다면 아이 관점에서 대충 보고 나와야 할것 같긴하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비행기 기차 배 등등의 관심 요소들이 있어

아이와 관람을 해서 새로운 경험을 해주는것도 좋을것 같다.

일단 동대문에 버스타고 도착해서 오랜만에 여유있게 온 동대문 ddp를 

여행 온 기분으로 다녀보았다.

친구를 기다리는 중에 DDP 사진을 찍어 보았다. 주말인데 한적해 보인다...

그늘이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다 실내나 아래 층에 있었다.

아이폰 파노라마 기능으로 찍어 보았다. 대충 이런 느낌.

A3 이라는 문을 한번 들어가 봤는데 이런 공간이 있었다.

시원하고 쾌적하고 천장이 높고, 의자와 테이블도있고, 카페도 있었다.

여기서 시원하게 사람 기다리기 좋아 보였다.

바로 뒤에 있는 문을 나가보니 이런 공간이 있었다.

역시나 사람이 없고....한가해 보인다.

너무 넓어서 파노라마를 찍어 보았다.

햇볕은 정말 쨍쨍하고 사람은 거의 없다, 아래에 흰 장미꽃 조명이 밤에 이쁠것 같다.

밤에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A3을 나와서 루이비통 전시관을 찾아본다. 이런 대형 포스터가 있었다.

아래 내리막 길로 내려가서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알림터 A1 아트홀이었다...

포토존이라 사람없이 찍을수가 없었다.

다들 옷 잘 입으시는 분들이나 모델같은 분들도 많이 보였다.

실내로 들어가면 바로다. 시간을 맞춰 줄서서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는 관람시간안에 왔기때문에 티켓 확인하고, 바로 입장했다.

입구에는 이렇게 전시 팜플렛이 있었다.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세가지

루이비통 전시는 첫번째는 파리, 두번째는 도쿄 그리고 세번째로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한다.

네번째인 미국보다도 먼저 서울에서 열린것이다.

참고로 까르띠에 전시가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중에 있고 

곧 샤넬전시회도 서울디뮤지엄에서 열릴 예정이다.

어떤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어서 참고해본다.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서울을 주요 무대로 삼는 것은 

한국 소비자들이 주변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 세터’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패션 스타일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으로 퍼지고,

 한국 유명인들의 SNS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이나 각종 행사와 관련된 온라인 바이럴 효과가 

한국에서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면서 

“과거 도쿄나 홍콩에 비해 서울이 마케팅 효과가 높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61501031721086001)

전시관으로 들어갔더니 또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분이 키넥트 처럼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로 몸을 움직이면 저 비행기를 이리저리 조종 할수있게 만들어 졌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동양의 기와처마가 슉슉 지나간다.

메종의 창립자 루이 비통의 초상화이다. 잘생겼다.

루이 비통은 5 남매중 셋째 아들로 1835년 14살 소년으로 

고향{스위스국경에 인접한 쥐라산맥의 작은마을 ,앙쉐(Anchay)}을 

떠나 파리로 왔다고 한다. 걸어서 파리에 도착하기 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14살의 나이로 

파리에서 상류층의 여행짐을 싸주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 185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내놓게 된다.


PART 1

1960년도 트렁크

위의 이 사진은 초상화 다음으로 보이는 첫 트렁크이다.

보안요원 분들이 곳곳에 있어서 전시물의 안전과 관람 매너를 관리해 주신다.

만지는것은 당연히 안되고 너무 가까이 보는것도 안되고...

사진촬영은 가능하나 플래쉬촬영은 안된다.


PART 2

나무


위사진과 아래 사진들은 루이비통의 제작소의 사진들과 청구서, 제작도구들이다.

루이 비통은 파리에서 상자 제작자 겸 전문 패커인 

로맹마레샬(romain Marechal)의 도제로 일하며, 

일상적인 물품뿐만 아니라 드레스와 같이 

부피가 큰 의상 등을 담을수 있는 맞춤 제작상자와 

트렁크를 만들고 포장하는 법을 연마했다고 한다. (출처 : 팜플렛)

그러니까 루이비통은 내가 흔히 생각했던 가방으로 시작했던것이 아니라 

상자와 트렁크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하라였구나 라고 새삼 깨닫는다.

서민들 같았으면 그 시대에 무슨

 거대한 모자나 드레스를 담은 상자나 트렁크를 싣고 여행을 갈수나 있었겠나.

귀족들 부르주아들 상류층들이 성 같은 이 별장, 저 별장을 여행할때 

주문제작했을 드레스와 모자, 구두, 화장품, 향수, 악세서리, 피크닉 그릇세트, 

찻잔 세트, 책, 필기도구 등의 온갖 짐을 싣고

마차도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요트, 크루즈를 타고, 기차를 타고

모험과 탐험을 떠나고, 

고전 명작인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그 시대를 같이했던 1873에 발표된것을 보면

그 시대의 상류층들은 그런 여행과 모험을 좋아했던거 같고, 

또 그것이 그들의 부와 명예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을것 같다.

사실 여행이란 것이 단순히 돈을 들어 물질을 가지는것이 아닌,

돈으로 가질수 없는 자신만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과 발견과 기록물이 되는것이니.

지금의 현대사람들도 여행에 대한 생각은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본다.

청구서의 글씨체가 정말 예술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을것 같다.

포장전문가의 도구 도판 1,2 이다. 칼같이 만들려면 칼같은 도구의 도면이 있어야 하겠지.

정말 뼛속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야 완벽한 명품을 만들수 있겠구나 하고 다시금 또 배운다. 

아래 두 사진은 실제 도구들의 모습이다.


PART 3

클래식 트렁크

아래의 사진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말해 주는데,

팜플렛을 참고해서 적어본다면, 

루이비통은 인체공학적인 디자인 연구뿐 아니라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운 여행가방을 제작하는데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완성한 평평한 형태의 트렁크는 오늘날 현대적인 여행가방의 시초가 되었다.

이러한 인기로 모조품들이 생겨나자 루이비통은 캔버스 소재를 활용하고 

혁신적인 패턴을 개발해 모조품으로부터

브랜드의 차별성을 확보하며 그만의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1875년 루이비통은 세로로 세울수있는 

최초의 워드로브 트렁크(wardrobe trunk, 옷장 트렁크)를 개발하였다.

라는 전문이다.

그 당시에도 모조품이 생겨났구나.

그래서 현신적인 소재와 패턴의 개발로 브랜드의 차별성을 확보하며 

그만의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이것은 현재시대의 브랜드에게도 통용되는 법칙같은것인데,

이렇게 루이비통은 패션 브랜드의 역사의 초기 주자로 정체성을 지키며

현재까지 이어이고 있다.


아래의 사진도 역시 PART 3에 있는 클래식 트렁크 인데, 

천연소가죽 소재의 우편물 트렁크.

어느 귀부인의 구두, 꽃, 모자가 담긴 트렁크.

어느 신사의 모자가 담긴 트렁크.

옷장트렁크, 우편물 트렁크, 책장 트렁크, 모자 트렁크, 로우 트렁크와 하이 트렁크,

 두개의 단으로 구성된 이데알 트렁크는 "복식 전문 패커"로서 손상되기 쉬운 물건을

안전하게 포장하는 루이비통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고 한다.


트렁크의 디테일을 촬영해 보았다.

질이 좋은 가죽, 금속, 나무는 세월이 자나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묻어나오는 빈티지한 오래되어 더 가치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위의 사진은 루이 비통 메종에서 개발한 특허받은 발명품들에 관한 자료이다.

요즘에서는 디자인특허와 같은것이라고 보면 될것같다.

팜플렛의 전물을 인용하자면

1890년 메종에서 개발한 주요 발명품 중 하나인 텀플러 장금장치(tumbler lock)는

고유번호를 지닌 하나의 열쇠로 고객들이 소유한 여러개의 루이 비통 트렁크를

모두 열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1896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노그램 캔버스가 탄생했다. 

조르주 비통은 1892년 세상을 떠난 루이 비통의 이니셜을 새겨

창립자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아름다움과 기능성, 이동성을 고루 갖춘 오브제와 프렌치 스타일을 결합한

고유의 디자인은 루이 비통 메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라고 한다


PART 4

여행의 발명

다음으로는 PART 4. 여행의 발명 으로

전시관에 들어서면 와~ 하는 느낌이 온다.

영화 세트장이나 무대라고 해도 될만큼 전시 공간을 잘 만들어 놨다.

파노라마도 찍은 사진인데

직접 가서보면 더 시원하고 뜨거울것 같다.

PART 4. 여행의 발명에서는 A. 머나먼 곳으로의 탐험, B. 요트시대의 도래,

 C. 자동차, D. 항공, E. 기차 이렇게 다섯가지로 나뉜다.

여기에서 그래서 이번 전시 제목이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구나 하고 더욱 느낀다.

 

A. 머나먼 곳으로의 탐험에서는 

앙드레 시트로엥(Andre citroen)이라는 탐험가가 나오는데,

 그가 1924년~25년 사이에 조직한 아프리카 횡단탐험대(La Croisiere Noire)는

인류학적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탐험대 였다고 한다.

시트로엥의 요청으로 탐험에 동참한 루이비통은 기후와 교통수단,

탐험가들의 일상에 맞춰 특별 주문된 실용적인 트렁크(티 세트, 세면도구 키트 트렁크)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 가방과 트렁크 모두가 탐험에 갔다온것은 아니고, 영화소품으로 제작된 

트렁크와 가방도 있다.


바로 반대편은 B. 요트 시대의 도래 이다.

아래 사진에서 나오는 저 가방을 스티머 백이라고 하는데,

20세기 초반, 루이비통이 고안해낸 스티머백(Steamer Bag)은 

핸드 러기지 산업에 혁신을 가져왔다고 한다.

스티머 백은 루이비통 최초의 소프트 백이었다.

1910년대 이후 크루즈 여행객들은 해상날씨나 시간에 따라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갈아입었다고 하는데,

장시간의 증기선 여행 중 늘어나는 빨랫감을 담기 위한 가방이었다. 

 트렁크 안에 접어서 보관할 수 있게 보조가방으로 스티머 백은 디자인됐고, 

가벼우면서도 실용성을 갖춘 모던한 크기로 현대 여행 백팩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12년 처녀 출항한 호화선박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던 상류층 인사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제품이었다.

1930년대에는 갑판 위에서 태양을 즐길수 있는 여름용 의상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옷의 부피가 줄어드는 시대에 따라 루이비통은 투박한 트렁크보다 

가볍고 실용적인 스티머백으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C. 자동차 인데,

그 당시의 자동차에는 천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탈때는 모자나 베일을 쓴채 두툼한 고글을 착욕한 패셔너블한 승객이 

납작한 모로코 가죽 가방을 팔로 안고 있는 사진들도 눈에 띈다.

사진을 보다보면 클랙식한 흑백 패션화보같다.

지금은 자동차에 천장도 있고, 자동차가 엄청 많은 시대에 나는 살고 있는데,

저 당시 상류층은 저렇게 살았구나 하고 잠시 아이러니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운전기사를 위한 복장과 트렁크도 있었다.

이 동그란것은 바퀴를 담고 다녔을까? 생각해 본다.

위의 사진은 모로코 가죽소재의 플랫한 여성용 핸드백 이라고 되어있다.

너무 이쁘다....

지금 들고 다녀도 너무 이쁠것 같다. 

이렇게 루이비통은 유행을 만들고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창조하였구나. 싶다.

유수프 케말 왕자가 소유했던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의 피크닉 트렁크이다.

차 세트 트렁크. 상류사회의 티타임은 아마 아주 중요했을것으로 생각된다.

비토니트 캔버스 소재의 피크닉 트렁크

그레인드 가죽 소재의 노에 백

노에백의 유래를 찾아보니 

노에백은 버킷백(Bucket bag : 양동이 or 주머니 형태의 가방)의 일종으로]

 1930년대 샴페인 공장장이

귀중한 샴페인 운반을 위해 의뢰하여 고안한 디자인으로​ 

노아의 방주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현재까지도 다양한 캔버스 소재와 컬러감으로 항상 유행라인에서

 한자리하고 있는 아이템입니다.




이라는 글이 있어서 참고 했다.

그다음은 D.항공이다.

팜플렛에 보면 20세기 초, 루이비통은 비행선부터 배행기까지 

하늘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 발명가들과도 긴밀하게 작업했다고 한다.

비행사과 승객들을 위해 제작한 트렁크를 에어로 트렁크라고 했는데

아주 구체적으로 " 옷2벌, 외투1벌, 셔츠10벌, 나이트가운 3벌, 속옷3벌, 

양말 6켤레, 손수건 12개 신발 1켤레, 탈부착이 가능한 칼라 18개, 

장갑, 타이, 모자" 등으로 26kg 미만의 소지품을 담을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속으로 몇박몇일 일정일까... 속옷이 3벌이면 3박인가...근데 왜 셔츠는 10벌이지..?

속옷을 빨아가면서 여행을 해야하나...

하는 별 중요하지도 않은 걱정을 했다.

여하튼 비행기가 너무 무거우면 안되니까 수화물 무게와 종류에 대해서 까지

디테일하게 계획 제작한 가방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본격적인 핸드백의 시대는 열기구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열렸다.

가볍고 물에 뜨는 에어로 트렁크(Aero Trunk)와 각종 소프트백(Soft Bag)이 제작됐다. 

뒤이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소프트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키폴백(Keepall Bag), 스피디백(Speedy Bag), 노에백(Noe Bag), 알마백(Alma Bag), 

락킷백(Lockit Bag), 파피용백(Pappillon bag), 소뮈르백(Saumur Bag), 

네버풀백(Neverfull Bag. 2007), 티볼리백(Tivoli Bag) 등은 

시대를 초월해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http://www.cnbnews.com/news/article.html?no=350086 참조

다음은 E. 기차 이다.

센스 넘치게도 기차처럼 길죽하게 전시 공간을 구성하고 창문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이쯤 되면서 무료 전시회인데 규모가 상당히 크다는걸 실감하면서

관람을 하였다.

이것은 가스통 루이비통의 개인 수집품인 호텔 라벨 컬렉션이다.

너무 이쁘다. 나는 이게 제일 탐난다.

전시 공간을 파노라마로 찍어 보았다. 너무 어둡고 흔들려서 초점이 안맞다.


팜플렛에 보면 교통수단의 진화로 라이프스타일에도 커다란 변화를 맞는데,

1830년대 증기선 운항 시작, 1848년 철도와 1890년 자동차의 발명, 

1900년 민간 항공사의 출현으로 

세상은 새로운 삶의 방식과 경험으로 인도된다.

북해 연안의 평화로운 해안도시와 항구들, 영국 해협, 바스크 지방, 

지중해는 쉽게 다다를 수 있는 휴양지로 변모한다.

여행자들의 편안함을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의상은 새로운 여행 방식에 맞춰 변화하였고,

뉴트럴 톤의 수트, 코트, 오버롤은 당시 최고의 유행이었다.

캐빈트렁크는 침대차 좌석 아래에 밀어 넣을수 있었고, 

여행객들은 스퀘어 마우스와 글래드 스턴 여행가방, 

코냑이나 흑회색 톤의 가죽 가먼트 백, 나이트 백을 저마다 손에 들고 있었다.

여행은 하나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PART 5

부재의 시간

그리고 PART. 5

부재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관이 넘어가는데,

책장트렁크, 라이브러리 트렁크, 집필트렁크, 이동이 가능한 사무실, 

그리모어 케이스

루이비통 하우스는 현대 전자통신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유명작가든 무명의 아마추어든 집필이 필수이자 기쁨인 이들과 함께 했다.

루이비통의 손자인 가스통 루이비통은 이러한 삶의 방식과 예술을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글을 쓰는 것과 책에 대한 애정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는 타이포그래피에 몰두하며, 모노그램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그용도를 확장했다.

작가이자 숙련된 제도사였단 그는 종이 수집에도 심취해 있었다.

요즘은 책도 핸드폰으로 보는 세상인데,

책이 얼마나 무거운데 이렇게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정말 작가나 

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것 같다.

오른쪽은 필기도구 트렁크이다.

요즘시대와 비교한다면 이 트렁크는 노트북같은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데스크 트렁크라고 한다.

책상을 들고 다니다니 이것은 트렁크의 가구 수준이다.

이것은 라이브러리 트렁크인데

책의 크기에 따라 높이를 조절할수있게 홈이 있다. 정말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벽하다.

가스통 루이 비통이 그린것으로 추정되는 이니셜 모노그램

"GLV" 드로잉이다.

가스통 루이 비통은 가문의 문장도 만들고

이런 이니셜 모노그램과 로고, 마크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끈임없이 연구하고 디자인한것으로 보인다.


PART 6

페인팅 트렁크

그리고 PART. 6 페인팅 트렁크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2001년도 마크제이콥스와 스테판 스프라우스가 디자인한

루이비통 모노그램 그래피티 캔버스 소재의 스피디백(위), 모자박스(중간), 키폴백(아래) 


데미언 허스트의 루이비통 

천연 소가죽 소재의 의약품 캐비닛 트렁크 세트(2009)

전혀 의약품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마크제이콥스가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협업을 통해 디자인한 루이비통 

아이 러브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의 키폴백(2003)

무라카미 다카시, 아이 러브 슈퍼플랫 화이트 / 블랙 (2003)


PART 7

진귀한 트렁크

그리고 PART. 7의 진귀한 트렁크 이다

1900년대 부터 가스통 루이비통이 수집을 시작해

진귀한 트렁크와 함, 상자 컬렉션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담고 있다.


PART 8

패션의 아름다움

그다음은 PART. 8 패션의 아름다움

A. 유명인사의 여행가방에는

당대 유명한 여배우들의 소장 트렁크로

의상 트렁크 부터 깨지기 쉬운 화장품이나 향수병 케이스 ,보석 상자에까지 이른다.

배우 윤여정의 모노그램 캔버스 뷰티 케이스도 있었다.

그리고 루이비통이 배우 배두나에게 기증한 드레스도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인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아쉽.

루이비통과 배우 샤론스톤이 미국 에이즈 재단(amfAR) 후원을 위해 협업해 제작한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의 암파르 원 배니티 케이스 (2000) 


B.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향수병

루이비통의 향수는 잘 몰랐는데 이번기회에 잘 경험한거 같다. 

전시과 마지막 부분에는 향수를 시향하고 도록과 루이비통의 다양한 도서 및 스티커

향수 등등을 체험하고 구입할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C. 세련된 신사들

1920년대 루이 비통 메종은 

당시 신사들이 즐겨 사용하던 지팡이의 손잡이 머리 부분을 

예술가들에게 조각하도록 맡겨 뛰어난 예술적 창조성으로 그 품위를 더하였다.

베스테기 가문이 소유했던 줄무늬 캔버스 소재의 우편물 트렁크

현재는 남성 컬렉션의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가 2011년 이래 

현대적인 루이 비통 남성상의 모습을 정의 내리고 있다.

나는 킴 존스라고 하기도 하고...저 빨강 파랑 흰색 검정의 색깔이 한국적으로 보여서

혹시나 한국인일까 물어봤더니...

이름이 킴이고 성이 존스시라고....

퍼스트 네임을 킴으로 하는 외국인 이름이 많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검정을 빼면 프랑스 국기 색깔이기도 했다.


그리고 D. 예술가와의 협업

물론 앞에서도 언급된 협업된 디자인들이 있었었다.

1996년 루이 비통은 모노그램 캔버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ia),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로메오 질리(Romeo Gigli), 헬무트 랭(Helmut Lang), 시빌라(Sybilla),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세간의 이목을 주목시키며, 대담하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듬해, 루이비통은 마크 제이콥스(Mark Jacobs)를 아티스틱 디렉터로 영입하고 

기성복 컬렉션을 출범하며 패션 하우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마크 제이콥스는 기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직을 역임한 16여 년간 매 컬렉션마다 

루이비통의 세계를 세롭게 해석함으로써 찬사를 받았고, 

세계적인 예술가 스테판 스프라우스(Stephan Sprouse),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와 진행한

협업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와의 협업으로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에 

박차를 가했으며, 그보다 전에 진행한 밥 윌슨(Bob Wilson)과의 작업 또한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 비통을 떠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와 가방이 예술가들에 의해 재해석되면서

더욱 풍성해진 현대미술과 루이비통의 만남은

2014년 아티스트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협업한

<스튜디오 트렁크(studio-in-a-Trunk)>에서도 잘 드러난다.

왼쪽부터 

루이비통과 로버트 윌슨의 협업으로 제작된 형광 모노그램

베르니 가죽 소재의 휴스턴 백(주황) 과 리드백(핑크)

스테반 스프라우스에 협업하는 루이비통 로즈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의 키폴 백과

가죽 소재의 알마 백

루이비통의 킴존스와 슈프림의 협업으로 제작된 모노그램 캔버스 우편물 트렁크

(2017 가을 겨울 컬렉션)


PART 9

뮤직룸

루이비통 메종의 설립 이후 지금까지 고객들은 자신만의 꿈을 충족시켜줄

특별한 트렁크의 제작을 의뢰해왔다.

그 어떤 까다로운 요청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함도 실현가능하다.

샤워트렁크, 제단트렁크, 침대트렁크, 시가트렁크 등 

모든 여행자의 포부 넘치는 특별한 요구를 

루이 비통은 일관된 정문성을 가지고 충족시켜 왔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기는 아마도 가장 포장하기 까다로운 아이템일 것이다.

바이올린이든 기타든 지휘봉이든, 트렁크 제작자는 악기를 보호하고 

최상의 조건을 유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케이스를 디자인한다.

우아한 악기의 윤곽을 따라 만들어진 이 특별한 케이스는 악기와 악기가

선사하는 음악이 안전한 여행을 할 수있도록 보장해 준다.

이부분에서는 흡사 설치미술이나 디스플레이를 보는 것 처럼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고객들의 꿈을 담는 트렁크 라는 부분이 정말 특별했다. 


PART 10

예술적 영감의 나라, 한국

설립 이해 '여행 예술(Art of travel)'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루이비통은

 심미안과 정교한 기술로 명성을 얻었다

루이비통을 대표하는 트렁크와 가방은 시대를 초월해 여행의 동반자 역할을 해 왔으며

 혁신적인 디자인을 전세계에 소개해 왔다.

오랜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한국또한 루이 비통에 영감을 선사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과 루이비통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00년, 장인들의 정교한 기술로 탄생한 작품들을 소개하였던

파리 만국박람회에 나란히 참여한 인연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제국이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전시한 여러 오브제 중에는 전통악기도 포함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폐막 이후 프랑스 현지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악기를 보유한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Pillharmonie de paris) 산하 음악박물관(Musee de la Musique)의 소장품을 선보인다.

이는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를 계기로 기증된 것으로 대금, 장구, 가야금 등

한국 전통 악기에 스며든 악기장 고예기술의 정점을 보여 준다.

이러한 문화간의 조우는 다른 형태로도 발현되었다.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전시된 한국전통함은 컬렉터 가스통 루이 비통이 수집한

 엔틱 트렁크, 그리고 루이비통이 제작한 트렁크와도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신부를 위해 고이감아 넣은 비단실타래를 포함한 전통 예물이 담긴 아름다운 혼례함은

루이비통이 그간 구현해 온 트렁크 디자인과 비슷하게 제작되어,

두 문화간의 교차점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월간 멋 이라는 잡지인데 몇년도 잡지인지 알고싶다.

어깨뽕이 필수였던 저런 옷들의 시절이있었다.

아마 1980~1990년도 사이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루이 뷔똥 이라는 글씨가 확 와닿아서

한글은 정말 발음을 잘 표현할수있는 문자라고 생각한다.

연아퀸의 스케이트화 트렁크

2012년 루이비통 프랑스 공방의 장인이 커스텀-메이드 서비스 방식으로 제작한 

이 트렁크는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터인 동시에 유니세프의 국제 친선대사 등

각종 활동을 통하여 사회에도 공헌하고 있는 김연아"를 위해 

스페셜 트렁크를 만드고 싶다는 루이비통의 제안에 의한 것으로

피겨스케이터로서 루이비통으로부터 스페셜 제작품을 헌정받은 스케이터는 

김연아 선수가 최초라고 한다.

암요~암요~ 퀸연아는 정말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그 이후 루이비통은 똑같은 가방 한 개를 더 제작해 경매를 통해 판매했고 

그 수익금 전액을 유니세프에 후원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장인정신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루이비통의 장인과 디자이너들이 

직접 ‘플라워 트렁크’를 만드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옆에서 통역하시는 분이 제작과정을 설명해주시고 질의응답도 해주셨다.

불어는 역시 듣기가 너무 좋았다.

전시회의 마지막 순서에 루이비통 측은 “기계가 발달한 오늘날 

수작업은 이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던 모든 생각이 뒤바뀌는 계기가 될 것”

이라며 자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루이비통 전시회 정말 너무 최고로 알찬 전시회였다.

루이비통 가방 하나 사러 백화점으로 가야할것같은 느낌

전시회보고 루이비통 팬이 됐음.


마지막 북스토어에는 

책, 스티커, 도록 등등이 있었다.

대부분 인터넷으로도 안팔아서 살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향수도 시향할수있게 하고 판매도 하였다. 언듯 들었는데... 

30ml에 이십얼마래나....

인터넷으로 보니 30ml는 안팔던데...

인터넷으로 해외구매대행으로 최저가가 100ml에 삼십얼마고 보통 오십얼마더라...

향수가격도 ㅎㄷㄷ이다...

시향한 카드를 가방안에 넣어놨는데, 아직도 향이 난다.

루이비통 향수까지 탐이나네...

가운데에 있는 것이 이번 전시회 도록인데

가격이 7만원인가 했고 두번째 도쿄전시회와 도록이 같다고 한다.

오른쪽에 빨, 검 도록은 프랑스 전시 도록이라고 한다. 가격이 11만원 정도였나..

스티커 덕후인 내가 끝까지 고민했던 이것은 7만원이라고...


루이비통 전시회 리뷰를 마치며...

전시회도 생각보다 규모가 방대해서 신나게 사진 촬영 하다가

배터리가 방전될 지경이었다.

이건 일개 패션 브랜드의 전시가 아니라

근현대 패션 역사의 전시회였다.

무료전시회였으나 루이비통을 대호감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정말 고급지고 우아한 마케팅이기도 했다.

지금 서울에서 까르띠에, 샤넬의 전시도 하고있어서 다녀와 봤는데

단언컨데 루이비통 전시회가 최고였다.

아들이랑도 같이 오고싶는 전시회였다.

전시회 관람도 시간이 많이 들었었지만

리뷰 적는데도 더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다.

루이비통 전시회 포스팅을 얼마 동안 적었는지 부끄러워서 이루 말을 할수가 없다.

포스팅을 적으면서 다시 학생시절로 돌아가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가방의 종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패션의 역사과 근현대사까지 공부하였다.


내가 참고한 자료는 내부분 출처를 남겨 놓았고,

팜플렛 전문을 적기도 하였다.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보기에도 너무 유익한 전시회다.

정말 추천한다.

8월 27일까지 한다고 하니

시간되시는 분들 꼭 예약하시고 가시길 추천한다.

주말 연인또는 친구, 가족과 데이트하기에도 괜찮았다.


전시회 관람다하고 두타에서 쇼핑을 해도 좋고,

현대 아웃시티 아웃렛 지하에서 밥먹는것도 추천한다.


만자가 넘는 포스팅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린다.

사진도 100장이 넘게 들어가서 잘 안열릴까봐 걱정된다.

잘 안 열려도 짜증은 내지 마시고... 모두들 굿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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